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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천 개의 아침

나는 큰떡갈나무 아래 살았을 때/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느낌이었지./  나는 리틀시스터 연못가에 살았을 때,/  기슭에 남겨진/  왜가리 깃털이 된 꿈을 꾸었지./ 나는 수련이었고, 내 뿌리는 동맥처럼 섬세했어,/ 얼굴은 별 같았고,/ 행복이 넘쳐흘렀지./ 나중에 나는 바다를 따라가는 발자국이었어.   메리 올리버 『천 개의 아침』   시끌벅적한 인간사가 싫고 자연이 좋아지면 늙었단 증거라는 말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는 어떤가. “오늘 아침/ 아름다운 백로 한 마리/ 물 위를 떠가다가// 하늘로 날아갔지/ 우리 모두가 속한/ 하나의 세계//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다른 모든 것들의 일부가 되는 곳// 그런 생각을 하니/ 잠시/ 나 자신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져.”(‘하나의 세계에 대한 시’). 여기서 자연은 그저 번잡한 일상을 피해 가는 곳이 아니다. 모든 존재를 품어주는 곳.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다.   미국인들이 사랑한 시인 메리 올리버. 2019년 그가 세상을 뜨자 “그녀의 말들은 자연과 정신계를 이어주는 다리였다”(마돈나) “당신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의 축복이었다”(오프라 윈프리) 등 셀럽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평생 자연 곁에서 살았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자연이라는 교과서에 주목한 자연주의자”(‘서치’)란 평을 받는다. 자연과의 합치를 노래한 인용 글은 시 ‘인생 이야기’의 도입부.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지금 나는 여기 있고, 나중에는 저기 있을 거야./ 나는 저 작은 구름이 되어, 물을 내려다볼 거야,/ 멈추어 있는 구름, 흰 다리를 든 구름/ 아기 양처럼 보이는 구름.”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평생 자연 메리 올리버 리틀시스터 연못가

2023-06-07

[시로 읽는 삶]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올바른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메리 올리버 시인의 ‘정원사’ 부분       질문이 많아지는 때가 있다. 시간에 대해 강박감이 몰려오는 나이쯤에 이르면 이 질문들은 때때로 자기 학대를 불러오곤 한다.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라는 시인의 질문은 ‘그렇지 못했다’는 자책이 일부 깔려있기도 할 것이어서 질문은 후회를 동반하기도 한다.   지나온 길은 늘 미진하고 그래서 아쉽기 마련이다. 충분히라는 말에는 한계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충분치 않았을 약간의 부분을 인정하며 아쉬워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왔다. 시간을 아끼려고 종종걸음을 치기도 했고 미움을 사랑으로 덮으려고 사랑의 문들을 활짝 열어젖히기도 했다. 충분히 산다는 것은 어쩌면 충분히 사랑한다는 말이기도 하리라. 삶이라는 바닥에 발을 딛고 동분서주하는 발걸음만이 아니라 가슴의 온기를 퍼 나르는 어떤 유동성 있는 넉넉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충분하다는 건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모두 흡족하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무한한 시간성 안에서 유한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간의 횡포는 무자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살수록 줄어드는 시간의 화폭 위에서 무기력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밀도가 점점 낮아지는 시간의 질감, 그 허술함 안에서 충분히 살아가는 일, 충분히 사랑하는 일은 더 가열해져야만 가능한 것 아닐까 생각된다.   사랑이 아니라면 아침을 맞고 저녁을 보내는 소소한 일상에서 배어나는 단어들은 단순하고 지루할 뿐이다. 주어진 일에 전념하고 짬을 내어 신간을 들춰보는 다소 맥락이 있다고 여겨지는 시간조차도 뱉어놓은 단어들이 활기가 없기 일쑤다.     충분히 산 때문에 행복해지는 걸까? 충분히 사랑했기 때문에 감사한 걸까?     충분히 산다는 건 충분히 사랑했다는 방증 아닌가 싶다. 누군가를, 뭔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부산하게 발걸음을 놀릴 수는 없다.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재바르게 잰걸음으로 걸을 수는 없다.   사랑의 이름으로 소진되는 에너지는 사랑의 이름에서 다시 얻는다. 그러므로 사랑은 그 스스로 역동이다. 그 스스로 활력이다.     먼데 사는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날마다 분주하게 살고 있지만 맘은 허전하다는, 한 해를 보내며 회한이 섞인 문자다. 중년 여자들의 대화는 시간과의 조율에서 오는, 시간의 속도감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에서 오는 막막함일 때가 많다. 우리 문자의 끝은 “아직 크게 아픈 곳 없고 가족과 이웃이 두루 평안하다면 올해도 대박을 친 것이다”라는 위안이었다.   그렇다 올 한 해도 충분히 살았고 충분히 사랑했다면 당신도 나도 대박을 친 것이다. 다소의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을지라도 시간의 협곡을 무리 없이 지나왔다면 그것이 최고의 대박 아니고 뭐란 말인가.     오늘 하루가 충분히 살아갈 날들과 충분히 사랑할 날들을 위한 건배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 한해가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리며, 고독조차도 우아하게 맞이하려는 내일을 위한 충분한 준비였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북돋우며 격려하며 삶의 최대치, 행복의 최고치를 이끌어내려고 애쓴 당신도 나도 한 해 수고 많았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사랑 최대치 행복 우리 문자 메리 올리버

2022-12-20

[시로 읽는 삶]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대가 꼭 착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먼 길을/ 무릎으로 기며 참회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대 육체의 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하게 두라/ 상처를 말해 보라, 그대의 것을, 그러면 내 상처도 말해줄게/ (…)그대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그대의 상상 앞에 자기를 드러내고/ 기러기처럼 그대에게 소리칠 것이다, 들뜨고 거친 목소리로/ 만물로 이루어진 이 세계 어딘가에는/ 다시, 또 다시 그대 자리도 있다는 것을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 부분       이맘때가 되면 뭔가 결산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생긴다. 한 해를 돌아보게 되고 그러자면 후회와 반성이 앞선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지만 결산서는 미흡하다. 신앙적으로도 참회만 깊다. 아니 참회를 스스로 강요하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일은 인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의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거나 강박적이 되면 자기 자신을 들볶는 가혹행위가 되는 건 아닐까 묻게 된다.     오체투지가 신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믿고 온몸으로 기어 사막을 가로지르는 사람은 그만의 믿음이 있어 그리 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로 신에게 이르기도 할 것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육체라는 쉽게 깨지는 연약함을 지닌 존재들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넘어지고 쉽게 낙망하는 여린 자들이다.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한다. 당연한 말이겠다. 그러나 말의 강박에 포위되다 보면 자기와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사방에서 아우성을 치는 듯하다. 마치 자신이 싸움의 대상인 것 같은 모순에 직면하기도 한다.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메리 올리버는 말하는 듯하다. “그러지 않아도 돼. 자기 자신을 학대하지 마. 모두가 착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린 세상을 조화롭게 하는 하나의 개체로 존재의미가 충분해”라고.   세상에는 사회적 혹은 윤리적 잣대가 있다. 그 기대치에 다다르려고 노력하지만 모두가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다. 한 해를 결산하는 일도, 한 생을 점검하는 일도 그렇다. 미숙아의 체중처럼 늘 미달이기 일쑤여서 풀이 죽는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거기가 한계라면 그 정도라도 해낼 수 있었음을 격려하며 북돋워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쯤에서 자신을 안아줘야 한다. 미숙함까지도 품어주고 다독여 해줘야 한다. ‘나’라는 유일성, 충분히 사랑받고 위로받아 마땅하다고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보듬어주어 체온을 높여야 한다. 그럴 때 타인의 상처가 눈에 보이고 타인의 신음이 들리기도 할 것이니까.     그대와 나, 소외되고 외롭고 부족할지라도 어딘가에 자기만의 자리가 있겠고 그 자리는 세상의 한가운데라고 말해주는, 충분히 빛나고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시 한 편으로 12월의 흐린 오후가 뭉근하게 데워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2007년 출간된 소설가 김연수의 장편소설 제목이다. 소설 첫 페이지에 메리 올리버의 대표작이기도 한 ‘기러기’가 소개되었고 시의 한 행을 차용해 제목으로 삼아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과의 교감에서 오는 경이로움을 시로 써온 미국의 대표시인인 메리 올리버는 몇 년 전 타계해 이 세상엔 없지만 그녀의 시는 점점 더 밝은 빛이 되어준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메리 올리버 개체로 존재의미 소설가 김연수

20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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